
우연히 펼친 당신에게창조력
한여름에 유영국의 산을 걷던 날
추석 연휴에 다시 꺼내 본 팔월의 사진들
추석 연휴에 밀린 사진을 정리하다 팔월에 다녀온 유영국 회고전의 사진을 다시 열었다. 한 장씩 넘기다 보니 그날의 더위와 전시장의 서늘한 공기가 차례로 되살아났다.
팔월의 두 번째 토요일이었다. 폭염이 이어지던 때라 며칠째 옹이와 몽이 곁에 엎드려만 지냈다. 머리도 식힐 겸 산책이라도 다녀오려고 어디를 갈까 하다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는 회고전이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를 챙겨 볕 속을 걸었고, 미술관 문 하나를 지나자 서늘한 공기에 땀이 금세 식었다.
입구 홀의 벽 하나가 온통 주황이었고, 그 위로 짙은 초록 삼각형과 전시 제목이 걸려 있었다. 산은 내 안에 있다. 그때는 멋진 문장이구나 하고 지나쳤다.
흰 벽의 첫 방에는 큰 그림이 한 점씩 넉넉하게 걸려 있었다. 첫 그림은 파랑과 초록과 검정이 화면을 나눠 갖고, 그 아래를 노란 띠가 가로질렀다. 제목은 작품이었다. 어째서 이게 산일까. 형태만 봐서는 산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짙은 초록과 검정이 겹친 자리가 눈에 익은 산그늘의 색이었다. 형태보다 색이 먼저 산이었다. 그날 나는 이 그림 앞에서부터 그림마다 나름의 이름을 붙여 보기 시작했다.
설명을 찾아 들었다면 금방 풀렸을 것이다. 다만 설명을 듣고 나면 상상이 딱 그만큼으로 줄어들 것 같아서, 모르는 채로 조금 더 서 있기로 했다. 흰 모자를 쓴 사람도 같은 그림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저 사람은 이 앞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다른 그림들은 조금 더 쉽게 열렸다. 어떤 그림에서는 노을 지는 산이, 어떤 그림에서는 눈 덮인 겨울 산이, 또 어떤 그림에서는 어두워지는 저녁이 떠올랐다. 맞게 읽은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틀렸다고 할 사람도 없었다. 파랑 바탕에 흰 결이 성기게 인 이 그림 앞에서는 산을 감싼 안개를 떠올렸다.
방 모서리에는 사람이 제법 모여 있었다. 일행과 온 사람들은 그림을 가리키며 낮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눴고, 혼자 온 사람들은 귀에 무언가를 꽂은 채 말이 없었다. 오디오 해설을 듣는지 자기 음악을 듣는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들어 그림을 담았다. 저마다 자기 산을 그리고 있는 풍경이었다.
초록 위에 흰 덩어리 둘이 나란히 앉은 그림도 있었다. 왼쪽 덩어리에는 가는 세로 결이 촘촘해서 그 안에만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이 그림을 초록 들판을 건너가는 소나기 두 줄기로 읽었다. 산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첫 그림에 적힌 1964년은 그가 마흔여덟의 나이에 생애 첫 개인전을 연 해였다. 같이 그리던 이들이 파리로, 뉴욕으로 떠나던 때에 그는 서울에 남아 작업실로 들어갔다고 한다. 다들 밖으로 나가던 때에 홀로 남기로 한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가 찾던 산은 애초에 멀리 있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방은 어두웠다. 천장의 불을 끄고 그림에만 빛을 비춰서, 검은 벽마다 그림 한 점씩이 떠 있었다. 같은 색도 흰 벽에서보다 어둠 속에서 한층 진했다.
나는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으면 코앞까지 다가가는 편이다. 진한 색이 두껍게 올라앉아 붓이 지나간 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림을 좋아한다. 멀리서 산이던 것이 가까이 가면 다시 물감이 된다. 은빛 봉우리 아래 붉은 들, 노란 띠 속의 검붉은 마름모. 색과 색이 만나는 자리마다 물감의 두께가 그대로 능선이 되어 있었다. 그날 가까이서 찍은 사진들은 모두 이 버릇에서 나왔다.
어두운 편이 오히려 좋았다. 눈 둘 데가 그림뿐이라, 한 점 앞에 서면 그 그림이 시야를 다 채웠다.
그러다 한 그림 앞에 오래 멈춰 선 사람이 보였다. 검은 벽 하나가 따로 서서 흰 봉우리 그림 한 점을 지고 있었다. 지나온 산들이 모두 색이 짙었던 터라, 처음 보는 흰 산에 나도 눈이 갔다.
정면에 서 보니 눈 덮인 봉우리가 짙은 파랑 위로 솟아 있고, 하늘 끝만 노랗게 밝아 오고 있었다. 해 뜨기 전의 설산이 꼭 이렇다. 골짜기가 아직 어두운 동안 꼭대기가 먼저 빛을 받는다. 전시장의 어둠까지 그림 속 골짜기처럼 느껴져서, 산 아래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기분이 들었다.
또 다른 흰 산은 아래로 갈수록 검정에 가까워지는 파랑 속에 서 있었다. 그 아래에 붉은 막대 두 개가 불씨처럼 놓여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물감이 두꺼워 붉은 자리가 실제로 조금 솟아 있었고 조명이 거기에 얇은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불을 꺼야 보이는 것도 있다.
어둠을 빠져나오자 회색 벽 한가운데가 창처럼 네모나게 뚫려 있었다. 그 너머로 주황 그림이 보였다. 남의 집 창밖에서 방 안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산을 그리던 사람의 작업실 창밖에는 진짜 산이 있었을 텐데, 여기서는 창 너머에 그가 그린 산이 걸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온통 노을빛이었다. 한가운데의 정사각형 그림은 불에 달군 듯한 주황이었고, 좌우 벽의 그림들도 주황과 노랑으로 달아 있었다. 사방이 붉은데 이상하게 소란스럽지 않았다. 하루 중 가장 붉은 시간이 가장 조용한 시간이기도 하니까.
문틀 너머로는 노랑 바탕에 파랑이 새처럼 접힌 그림이 보였다. 이 전시에서는 문과 창마다 그림이 한 점씩 담겨 있었다.
노란 하늘 아래 초록 들이 접히는 그림도 있었다. 능선이 낮게 누워 있어서, 산이라기보다 산자락에 펼쳐진 들판에 가까워 보였다. 그동안 올려다보던 산을 이번에는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긴 흰 벽을 따라 그림들이 한 줄로 걸려 있었다. 어떤 산은 삼각형 하나로 서 있고, 어떤 산은 마름모 속에 들어앉아 있고, 또 어떤 산은 색면 몇 개로만 남아 있었다. 한 사람이 같은 산을 이렇게나 여러 모양으로 그려 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그다음은 바다였다. 바닥까지 파란 방의 벽마다 파도가 걸려 있었다. 노을빛에 달아 있던 눈이 파랑 앞에서 식었다. 한여름에는 파랑을 보는 것만으로도 피서가 된다.
한 점 앞에 멈췄다. 파랑과 청록 아래로 흰 물거품이 부서지고, 살구빛 모래 곁에 노란 언덕과 갈색 돌 하나가 놓인 바닷가였다. 산의 화가인 줄로만 알았는데 바다도 이렇게 그렸구나 싶었다. 산이든 바다든 그가 그린 건 결국 색이 쌓인 층이었다.
이 그림은 상상할 것도 없었다. 무엇이 파도이고 무엇이 모래인지 물을 필요가 없었다. 종일 추상의 산에 이름을 붙이느라 바닥난 상상력이 여기서 잠깐 쉬었다. 상상할 일이 없으니 대신 가까이 다가갔다. 물거품이 부서지는 자리에는 흰 물감이 두껍게 올라와 있었고, 붓이 지나간 결이 그대로 파도의 결이 되어 있었다.
파도 그림들을 마주 보는 자리에 낮고 넓은 벤치가 놓여 있었다. 걷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앉았다. 앉으니 파도가 눈높이로 내려왔다. 바깥은 걷는 것만으로 위험한 여름인데, 나는 바다 앞에 앉아 파도를 보고 있었다. 한숨 돌리고 나니 그제야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어둠을 나눈 검은 벽, 창처럼 뚫린 회색 벽, 파도 앞의 이 자리까지, 공간 디자이너 양태오가 꾸민 자리들이 줄곧 좋았다.
바다를 지나자 그림이 아닌 것들이 나왔다. 물감이 흐르다 굳기를 거듭해 다리까지 딱지가 앉은 나무 이젤과 그 곁의 의자 하나. 그날 본 산들 가운데 여럿이 이 위에서 그려졌을 것이다. 벽의 글에 따르면 그는 약수동에서 추상의 기초를 놓고, 등촌동에서 후기 추상을 이루고, 방배동에서 생의 마지막까지 그렸다. 한 사람의 평생이 동네 이름 셋으로 접혀 있었다.
긴 벽 하나는 통째로 선반이었다. 손바닥만 한 그림들이 부엌의 그릇처럼 줄지어 얹혀 있었다. 파랑의 산, 초록의 산, 주황의 산. 큰 벽을 가득 채우던 산들이 여기서는 손바닥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는 이 작은 그림들을 팔지 않고 평생 곁에 두었다고 한다. 겨울이면 난방을 아끼느라 집의 좁은 마루에서 이만한 크기로 그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렇게 곁에 두었던 그림들이 지금은 한 벽에 모여 있었다.
마지막 방은 따뜻한 갈색이었다. 흰 빛과 검은 어둠을 번갈아 지나온 눈에 이 방은 온도부터 달랐다. 오래된 백열등 아래처럼 노르스름해서, 어둡다기보다 아늑했다.
그날 본 그림 가운데 가장 큰 두 점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화면을 다 담으려면 몇 걸음 물러서야 했다. 산은 이제 능선도 두께도 내려놓고 색색의 마름모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처음의 산들에서 멀리 왔는데도, 한눈에 같은 사람의 산이었다.
가까이 가서 마름모가 겹치는 자리를 들여다보았다. 칸과 칸 사이의 경계가 자로 그은 줄 알았는데, 붙어서 보니 손으로 그은 선이었다. 미세하게 흔들리며 나아가는 선이었다. 그 흔들림 덕분에 격자는 도표가 되지 않고 그림으로 남아 있었다.
이 격자의 산들은 그가 예순을 넘긴 뒤에 그린 것들이다. 예순한 살부터 심장에 박동기를 달고 살았고, 서른일곱 번을 입원하고 퇴원하는 사이에도 붓을 놓지 않았다. 붓을 내려놓은 것은 여든셋이 되어서였다. 그런데도 화면의 색은 조금도 지쳐 있지 않았다.
갈색 벽 한쪽에는 짙은 파랑의 밤 그림이 걸려 있었다. 흰 달이 하나 떠 있고, 아래 물에 그 달이 한 번 더 떠 있었다. 달 두 개를 오래 보고 있자니 깊은 물 밑에서 수면의 빛을 올려다보는 기분도 들었다.
전시의 끝에서는 화가의 다큐멘터리가 흐르고 있었다. 앉을 자리가 다 차서 뒤에 선 사람들까지 화면을 보고 있었고, 누구도 쉽게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림을 다 보고도 이 사람을 조금 더 알고 싶어진 건 나만이 아니었다.
문을 나서자 폭염이 기다렸다는 듯 돌아왔다. 돌바닥은 여전히 볕을 되쏘았고, 큰 나무 아래에만 그늘이 짙게 고여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미술관 벽에 걸린 전시 배너가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하루 종일 본 것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흰 벽의 큰 산, 어둠 속에서 진해지던 색, 창 너머의 노을, 눈높이의 파도, 물감이 굳은 이젤. 그런데 가장 오래 남은 건 주황 위에 초록 삼각형 하나가 선 그림이었다. 그렇게 화려한 산들을 지나왔는데, 색 하나와 도형 하나로 선 산이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사진을 정리하다 이 한 장에서 한참 손이 멈췄다. 한 달 반이 넘게 지났는데 그 주황은 아직 선명하다. 산은 내 안에 있다는 말을 그날은 멋진 문장으로만 읽고 지나쳤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날 본 산들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